부제: 버려진 영웅들의 외침과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교훈
주제: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적지에 남겨진 켈로부대원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전쟁의 아픔을 되새긴다.
또한, 수십 년간 잊혀졌던 그들의 공로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예우받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그들의 희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에 대한 과제를 제시한다.
핵심 내용:
- 정전협정과 함께 버려진 영웅들: 적진에 남겨진 이들의 절규
- 너무 늦었지만 시작된 예우: 법적 보상과 사회적 인정의 현주소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생존 대원들의 증언과 못다 한 이야기
- 켈로부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국가와 희생, 그리고 기억의 의무
들어가며: 1부의 발자취를 이어
지난 1부에서는 켈로부대(KLO)의 탄생과 눈부신 활약상,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극한의 고난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이름 없이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전쟁은 그들에게 또 다른 시련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정전협정이라는 예상치 못한 장벽과 함께 찾아온 '버려지는' 운명이었습니다.
1. 정전협정, 그리고 버려진 영웅들: "왜 우리를 버렸는가!"
1953년 7월 27일, 2년여 끌어왔던 정전협상이 체결되었습니다.
정전협상은 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 협상 시작일: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회담 시작)
- 협정 체결일 (끝):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서명)
한반도에 총성이 멎는다는 것은 분명 기쁜 소식이었지만, 적진 깊숙이 침투해 임무를 수행 중이던 켈로부대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이창건 박사는 정전 소식 후
"앞이 캄캄해지고 차를 운전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차를 멈추고 대놓고 울었습니다."
부대로 복귀하자, 북한에 나가 있는 대원들로부터 원망과 절규가 담긴 무전이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지지직~
"왜 나를 버렸냐?
왜 철수 명령을 안 내렸냐? 너무하는 거 아니냐!"
무전기에서는 피울음 섞인 대원들의 절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동안 울리던 절규도 어느 순간 멈추게 됩니다.
그들의 외침은 남은 부대원들의 가슴에 평생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해안가에 있던 대원들이라도 구출하려 했지만, 휴전과 동시에 부대가 가지고 있던 선박과 무기는 모두 미군에 회수된 상태였습니다.
자체적으로 선박과 무기를 다시 마련해 구출을 시도하려 했으나,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 단 한 명의 대원도 구출하지 못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적지에 남겨진 대원들의 생사는 대부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외침은 차가운 무전기 너머로 희미해져 갔고, 조국은 그들의 희생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1년여 동안 그들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살아남은 켈로부대원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으로 남았습니다.
2. 너무 늦었지만 시작된 예우 : 법적 보상과 사회적 인정의 현주소
수십 년간 켈로부대원들의 공적은 '비정규군', '숨겨진 인물들'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미군 소속으로 활동했던 켈로부대원들은 그마저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훈장과 유공자를 줬다 뺏는 정부 - 이게 과연 한 사람의 이야기 일까요?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더디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진전은 법적 보상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켈로부대원들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보상금 또는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이 일부 열렸습니다.
실제로 2023년 6.25 전쟁 제73주년 행사에는 켈로부대 출신 참전용사가 공식 초청되어 정부가 새로 마련한 제복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이는 늦었지만 국가가 그들의 공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예우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첫째, 보상 및 인정 절차의 어려움입니다.
켈로부대는 비밀리에 활동했던 탓에 공식적인 기록이 부족하여 참전 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고 합니다.
영상에서도 "아직 연락이 안 닿아서 이걸 못 받고 계신 분들이 상당히 많다고 해요" 라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대목이 이를 방증합니다.
둘째, 생존자들의 고령화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고, 생존해 계신 분들도 대부분 고령이어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이제 전쟁의 아픔은 잊혀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아픔은 잊혀져서도 잊혀질 역사도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사회적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의 필요성입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과거사로 잊히지 않도록 역사 교육과 추모 사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릴 필요가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조차도 포스팅 하기전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지금 여러가지 사실들을 알게 되었지만,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라도 글을 남기는 것과 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알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3. 켈로부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나라가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약속"
켈로부대원들의 삶과 희생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교훈을 던집니다.
임용한 박사님은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분들에겐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문화와 정신으로 자리 잡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철규 연구위원님 역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리 국군 장병들이 정말 목숨 걸고 전선으로 나가서 나라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그 원동력은, 내가 죽어도 이 나라가 나를 지켜주고 기억해 주겠다는 그 약속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켈로부대원들이 겪었던 '버려짐'의 아픔은 국가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줍니다.
켈로부대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기억의 의무: 국가는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모든 영웅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록할 의무가 있다.
- 합당한 예우: 국가를 위한 헌신에는 반드시 합당한 예우와 보상이 따라야 한다.
- 미래를 위한 교훈: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곧 튼튼한 안보의 초석이 된다.
미국이나 유럽 군인들에 대한 최우예우를 해 준다고 하는 뉴스를 종종 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던 비즈니석 신사가 군인에게 양보 했던 일화
형편이 어려워진 퇴역군인을 끝까지 보살피던 지역사회
재판을 하던 재판장 조차 벌금을 내게 된 군인에게 예우를 다 했다는 일화 등
과연 대한민국은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요?
결론: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힌 영웅들을 기억하며
켈로부대원들은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사적 비극 속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정전협정 이후 많은 대원들이 적지에 버려지는 비극을 겪었고, 살아남은 이들조차 수십 년간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공로를 기리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이름 모를 영웅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하며,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리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켈로부대, 그 이름 없는 영웅들의 외침에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이 포스팅이 조금이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그들을 기억하는 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이창건 박사님께서 수상 후 국무총리에게 급하게 쪽지를 전달 했다고 합니다.
90넘은 이제 그에게 명예가 중요할까요?
아마,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제 죽음을 앞에 서 있지만, 그가 살아 있는 순간 마지막까지
동료에 대한 애착과 죄책감은 우리 가슴에 세겨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별난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켈로부대(KLO): 역사 속에 숨겨진 이름 없는 영웅들 - 1부 (2) | 2025.06.07 |
---|---|
X-ray작전 -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첫번째 이야기 (1) | 2025.06.03 |
협상의 기술 12회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 2025.05.04 |
협상의기술 11회 윤주노 팀장 회사에서 잘리나? (2) | 2025.05.03 |
협상의기술 9-10화 이제훈 임원이 될 수 있을까? (1) | 2025.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