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작전 - 인천상륙작전 뒤편의 숨겨진 영웅들
부제: KBS 특집 다큐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이야기, 첩보전"을 통해 본 이름 없는 헌신
2016년 7월 26일 방송된 영상을 기반으로 포스팅합니다.
포스팅에 앞서서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5년이 되었습니다.
다큐 영상에 생생한 증언을 해 주시고 방영 후 4개월 만에 고인이 되신 故 함명수제독 님과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국가로부터 버림을 받았던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인천상륙작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전세를 단숨에 뒤바꾼 이 극적인 작전의 성공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들의 숨은 노고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KBS 특집 다큐멘터리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이야기, 첩보전" (2016년 7월 26일 방송)은 바로 그 이름 없는 영웅들, 특히 해군 첩보부대의 치열했던 '엑스레이(X-ray) 작전'을 조명하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이 글은 해당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기반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된 첩보전의 역사적 사실과 그 과정에 담긴 감동, 그리고 우리가 되새겨야 할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절박함 속에서 싹튼 반격의 불씨: 블루하츠에서 엑스레이로
한국전쟁 발발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던 암울한 시기. 맥아더 장군은 수세에 몰린 전황을 타개할 전략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합니다.
최초 상륙작전 계획은 '블루하츠(Blue Hearts)'였으나, 예상보다 빠른 북한군의 남진으로 무산되고 맙니다.
하지만 맥아더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확한 적정(敵情) 정보, 즉 '휴민트(Humint, 인적 정보)'가 절실했습니다.
1950년 8월 12일, 당시 해군 정보감이었던 故 함명수 제독(당시 소령)에게 극비 임무가 떨어집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모든 첩보를 수집하라는,
'엑스레이(X-ray) 작전'의 시작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 함명수 제독의 회고는 당시의 긴박함과 임무의 막중함을 생생히 전달합니다.
"이것을 극비로 해서 인천상륙작전에 필요한 휴민트, 인적 정보 수집을 책임지고 수행하라." - 故 손원일 제독의 명령
목숨을 건 첩보전: 17인의 결사대와 이름 없는 조력자들
함명수 소령을 포함한 17명의 해군 첩보대원. 이들에게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두 독신자'여야 한다는 것.
적진에 침투하는 위험천만한 임무였기에, 이는 어쩌면 최소한의 배려이자 보안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만약 적의 포로가 된다든지 혹은 배에 이상이 생겨서 표류했을 때 대원들이 '우리가 인천에 가려다가 이렇게 됐다' 하면 작전이 탄로 나잖아요. 작전 지역을 말할 수 없었던 지휘관, 묻지 않았던 대원들... 그렇게 말없이 임무를 받아들였습니다." - 故 함명수 제독
이들은 부산을 떠나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탈환하며 첩보 활동의 거점을 마련합니다. 덕적도와 영흥도가 바로 그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특히 영흥도는 서울, 수원, 인천 지역의 정보를 취합하는 핵심 거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첩보대원들은 민간인으로 위장해 적진에 잠입했고, 이 과정에서 이름 모를 수많은 주민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친척으로 위장해 통행증을 얻고, 은신처를 제공받으며 월미도의 북한군 배치 현황, 병력 규모, 포대 위치 등 귀중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이는 첨단 장비만으로는 불가능한, 오직 발로 뛰고 목숨을 던진 '휴민트'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포로가 되느니 자결하라": 첩보원의 비장한 숙명
첩보 활동은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임무였습니다. 첩보원들에게 내려진 철칙은 "절대로 포로가 되지 마라. 적의 포로가 될 경우에는 자결하라"는 비정한 명령이었습니다. 작전의 성공과 더 많은 아군의 생명을 위해, 그들은 기꺼이 자신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미 극동군사령부 소속 유진 클라크 대위가 이끄는 미군 첩보대가 영흥도에 합류하면서 첩보의 정확성과 신속성은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클라크 대위는 첨단 통신 장비로 수집된 정보를 즉시 도쿄 사령부로 타전했고, 인천상륙작전 D-Day에는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 연합군 함대의 길을 안내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희생으로 밝힌 승리의 길: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
인천상륙작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9월 14일 밤, 영흥도에 남아있던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는 북한군의 기습을 받습니다.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상황에서 이들은 동료들과 섬 주민들을 탈출시킨 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조국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며 함께 자결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생전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아 동상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홍시욱 하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선배들의 이와 같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과 해군, 그리고 저희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해군 후배 장교
기억해야 할 교훈: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전략적 판단, 연합군의 압도적인 전력 외에도,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수많은 첩보 영웅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숨은 영웅'으로 기억되기보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을 꿈꿨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함명수 제독은 다큐 촬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면하셨지만, 그가 남긴 증언과 기록은 한국전쟁의 이면을 생생하게 전하며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남깁니다.
정전 6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우리는 인천상륙작전 뒤에 숨겨진 젊은이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는 75년이 지난 시간, 서서히 살아있는 산 역사들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이 땅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서 이름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KBS 특집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전달을 넘어,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가 수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 위에 서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진정한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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